금강경유통본 31회 [삼매에들어야초월이시작된다] 아는 분들 다 아시지만 그 반야가 구체적으로 뭐냐? 안다 마음으로... 이런 게 아니에요, 지식으로 안다, 지혜로 안다. 그건 뇌지. 그건 마음이지 찧고 빻고 하는... 마음은 이분법으로 돼 있지요, 파동으로... '그건 가짜다'라고 나오지요. 초기경에... 반야는 살아있을 땐 그 마음이 잠드는 걸 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니에요. 한마음도 아니에요. 반야는... 아예 다른 단어를 쓰셨잖아요. 부처님이... 그리고 아까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나온 건 반야는 '안다'가 아니라 반야는 '본다'예요, 본다. 그래서 눈 안(眼)자를 붙인 거야. 그렇다고 육안처럼 눈에, 육체의 눈처럼 ’요런 거로 본다.’예요? 아니잖아요. 불안은... 불안은 육체가 없잖아요. 본단데 그건 형체 없는 반얀데 우주 너머의 모든 세계를 본다. 보게 되면은 뇌도 없는데 어떻게 아냐? 보면 안다. 실견실지 모두 보면 모두 안다. 보면 그냥 안다. 알 거 없어. 뇌가 필요 없어. '보면 안다'야 그런데 살아서는 삼매가 많이 되면 마음이 잠드는 걸 봅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전히 잠들었을 때 비유컨대 전신마취 시켜놔 갖고 육체가 이렇게 수술해도, 칼로 찢어도 모를 정도의 잠이 들었을 때 마음이... 그럴 때도 그 반야는 불멸로 깨어있다. 지복으로...
그리고 공부된 만큼 죽는 순간에 마지막 호흡이 넘어 가고 경전엔 호흡으로 비유하셨지요, 부처님이 직유하셨지요. 나아가 마지막 마음이 꼴까닥 하고 넘어가는 그 마음을 죽는 마음을 다 지켜보고 있다.마음을 지켜볼려면 그게 마음인가요? 죽는 마음을 지켜보는데... 어떤 마음은 죽고 어떤 마음은 살아있나? 그건 아니지요. 죽는 마음을 지켜보고 있는 게 반야다. 마음은 파동이고 들뜸과 후회, 반야는 불파동이다. 부동이다. 그래서 마음이 부동심 무심삼매가 됐을 때 그걸 조건으로 드러나는 게 그 저변에 궁극의 반야이다. 그래서 계정혜예요. 계율, 삼매, 반야 계율은 좀 착해져야 돼. 아까 나쁜 거에서 착해져야 돼. 보시 계율... 착해지니까 삼매가 돼 삼매가 되니까 착한 거까지 사라져. 그리고 더 나아가 무심이 되니까 그 산란한 마음이 없어지니까 뭐가 드러나지요? 반야가... 계율, 삼매, 반야... 삼매를 조건으로 반야가 드러난다. 부처님 정의하셨지요. 삼매와 반야는 다르케 정의 했어요. 삼매는 마음의 구족이다. 정의를 하셨어요. 마음의 최고다. 반야는 마음의 무슨 구족이다. 이러셨나요? 신통의 구족! 그게 '반야다'하신 거지 '반야의 구족이 신통이다'하신 거지요. 전지전능한 거다. 그렇게 하신 거야. 육신통... 그 정의를 따로 따로 내리신 게 마음이 무심이 돼서 마음이 최고의 지복이 되는 건 삼매로 끝난 거예요. 그런데 그나마도 보시라! 마음의 구족이 뭐야? 삼매가 뭐예요?
삼매는 산란한 마음이 통일된 마음이 되고 나아가 무심이 되는 게 삼매예요. 부처님이 정의하신 거지 이것도... 그러면 ’마음이 행복하다‘라는 게 역설적이지 않아요? 마음이 사라져야 마음이 행복한 거예요. 지금 정의가... 그래서 마음의 문제는 삼매로 끝났어. 반야는 지금 마음의 얘기가 아니에요.
또 다른 데서 정의 하시거든 삼매를 조건으로만 반야가 드러난다. 이건 다른 데에서 정의하신 거예요. '마음이 사라진 만큼만 반야가 드러나신다.' 하신 거거든 그러면 보시라! 마음이 사라진 만큼 반야가 드러나니까 반야는 마음이랑 다른 거예요. 그 반야가 불생이요 불멸이요 아트만과 동의어예요.
반야가 있다. 그래서 직유한 게 살아서는 흔히 숙면일여라고 하는 그게 대승기신론에 팔지보살, 구지보살, 십지보살 숙면일여가 왜 세 개나 있어요? 경지가 다르기 땜에... 그게 초기경에 나옵니다. 뽓타빠다 경에서 반야가 편재하는 과정이... 삼매가 높을수록... 그러니까 사실은 편재라는 의미가 이해하기가 어려울 건데 개체 입장에서 편재라고 한 거고 본래 입장에서는 구름에 가리어지고 있던 반야가 구름이 마음이 사라지는 만큼 드러나는 거예요. 원래 전체였던 거지. 그래서 그렇게 하고 그 반야 구경~ 궁극이 되기 위해서 색·수·상·행·식이 사라져야 된다. 색·수·상·행·식 색은 몸 몸뚱아리 물질의 무더기, 수상행식은 정신의 무더기 부처님이 정의하셨지요.